CSTC 인사이트[중앙일보 지면] 오피니언: 이병훈의 마켓 나우 (2025.03.04) 국가전략이 먼저, 정부정책이 나중이다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7883 


[이병훈의 마켓 나우] 국가전략이 먼저, 정부정책이 나중이다

중앙일보

입력 2025-03-04 00:06:00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인공지능(AI)과 양자기술(QT)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차세대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것만 같은 초조함 때문에, 정부는 전담 부서도 만들고, 전문 인력 양성도 서두른다. 뭔가 화두가 던져질 때마다 팔팔 끓어오르는 대책들 때문에 연구자들은 숨이 차오른다.

AI나 QT 분야는 주요 경쟁국 대비 연구인력·연구비가 100분의 1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우리는 왜 경쟁국들의 기술발전에 초조해할까. 반도체로 전 세계를 제패하고, 기술을 선도하고 나니까, 이제 다음 먹거리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엄습한 것이라면, ‘반도체로 세계를 제패한 적이 없다’는 현실 진단부터 하고 싶다.


메모리반도체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비중이 30%를 잘 넘지 않는 품목이다. 메모리반도체의 70% 정도를 차지한 우리나라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20%를 확보한 셈이다. 반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본 적이 없으니 ‘제패한 적이 없다’고 봐야 한다. 냉정하게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전체 반도체시장의 세력판도 내에서 접근 가능한 시장을 최대한 확보했다’는 것이 팩트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에 현재의 성과를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짚어두고,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동원 가능한 투자 규모, 데이터의 총량, 연구인력의 분포, 표준화 추진역량 등을 고려해볼 때, 우리나라는 특정 분야를 제패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분야별로 어떤 지위를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전략을 먼저 수립하고, 한정된 역량을 잘 배분해야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기초분야는 기초연구의 성격에 맞게, 경쟁분야는 경쟁의 시급성을 고려해서 지원하고 연구해야 한다.

AI나 QT와 같은 초경쟁 분야는 기술발전 속도가 여러 이유로 날로 가속화되고 있어서 예전과 같은 풀뿌리 연구체계나 ‘순차적’인 개발전략은 더는 적합하지 않다. 국가가 초경쟁 분야별로 핵심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고, 높은 수준에서 대규모의 동시적·집중적·병렬적 연구개발이 가능하도록 ‘초병렬’ 연구개발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AI 분야에서는 초거대 GPU·NPU 공유시설, QT 분야는 경쟁력 있는 양자컴퓨터 집적시설을 구축하는 등 연구자원을 집중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반도체 분야는 이종집적 반도체 연구시설을 구축하고 국가반도체연구소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외면하고, 인력양성이나 소규모 연구시설 구축 등 실효성 없는 대책에 자원을 분산시킨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는 시각이 설득력 있다.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효율과 효과가 미흡한 대책을 양산하기 전에 체계적인 국가전략을 먼저 수립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반도체기술융합센터, 포스텍

Center for Semiconductor Technology Convergence, POS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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