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TC 인사이트[중앙일보 지면] 오피니언: 이병훈의 마켓 나우 (2026.04.14) 반도체 주도권 싸움의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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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의 마켓 나우] 반도체 주도권 싸움의 데자뷔


중앙일보
입력 2026-04-14 0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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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학과장


최근 반도체 산업이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인해 요동치고 있다. 인공지능 연산에 필요한 HBM은 물론이고 여타 메모리 가격도 하늘 모르고 치솟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기록적인 수익성을 기록 중이지만, 범용 메모리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구조적 변화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아키텍처, 즉 AI 시스템 설계구조가 고가의 HBM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범용 메모리를 대량으로 활용하는 비용 최적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아키텍처의 변화는 HBM 주도권 경쟁에 참여할 수 없었던 후발 주자들에게 새로운 시장 진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상황은 1980년대 후반 세계 반도체 주도권의 이동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 기업들은 메인프레임용 고성능·고품질 메모리에 주력했다. 그러나 PC 시대가 도래하자 시장은 적정 품질과 합리적 가격을 원했고, 한국 기업들은 이 지점을 공략하며 주도권을 가져왔다. 1980년대 중반 시장 점유율 80%에 육박했던 일본의 수익 구조는 한국의 점유율이 10%를 넘어선 1980년대 말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의 점유율이 19%에 도달했던 1992년에는 삼성이 64M DRAM을 최초로 개발하면서 기술력까지 추월했고, 이듬해 세계 1위 자리에 올라섰다. 역사는 후발 주자의 점유율 10~20% 진입이 기존 강자의 지배력을 흔드는 분기점이 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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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의 창신메모리(CXMT)를 비롯한 후발 주자들은 과거 우리 기업들이 걸었던 경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2026년 현재 중국의 글로벌 DRAM 점유율은 10% 선에 근접한 것으로 파악된다. 과거 일본이 지배력을 잃기 시작했던 바로 그 점유율 구간에 중국이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HBM의 높은 단가와 한정된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빅테크들이 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CXL) 기술을 활용해 범용 메모리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스템 설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은 시장의 중요한 변수다.


30여 년 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범용 제품에서는 공정 미세화를 통해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고부가 제품군의 초격차 유지를 위해서는 전략의 무게중심을 근본적으로 옮겨야 한다. 메모리 수요 기업들과 시스템 설계 단계부터 손을 잡는 융합형 생태계를 구축하고, 단순한 부품 공급자에서 시스템 레벨 솔루션 제공자로 탈바꿈해야 한다. 비즈니스 모델이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때, 주도권의 이동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추격을 어떻게 뿌리칠 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학과장

반도체기술융합센터, 포스텍

Center for Semiconductor Technology Convergence, POS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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