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TC 인사이트[중앙일보 지면] 오피니언: 이병훈의 마켓 나우 (2024.02.15) 미래 공학인력 양성과 '향내나는 글'쓰기

오피니언 이병훈의 마켓 나우


미래 공학인력 양성과 ‘향내 나는 글’ 쓰기

중앙일보 입력 2024.02.15 00:14

원문보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8752#home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생각이 넘치면 글이 되고, 깊은 생각 끝에 나온 글에는 고유한 향기가 있다.

인터넷 시대에 넘쳐나는 글은 재치나 순발력, 시의적절이 느껴지지만 깊은 울림을 공감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주지하듯 글 쓰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마무리 짓는 방식도 있고, 글쓰기 전 단계부터 여러 안을 만들고 뼈대를 만든 다음 살을 붙여가는 방식도 있다. 나는 일단 쓰고, 계속 다시 고치는 ‘퇴고형’인데, 공학분야 논문 작성법으로는 학생들을 많이 피곤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논문 초안을 읽고 또 읽고,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라고 하니 학생들이 힘들어한다. 반면에 만들어 놓은 틀에 데이터만 바꾸는 방식도 있다. 예술작품도 아니고, 연구결과 전달이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 그런 방식이 효율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퇴고형 방식에도 장점이 있다. 생각이 넘쳐 글이 되듯이, 연구에 대한 사려가 깊어져서 써지는 논문이야말로 좋은 논문이 될 수 있다. 왜 이 연구를 하는지,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어떻게 해석했는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깊은 생각이 담겨있는 논문을 쓰면서 학생들이 연구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얼마 전 학부생이 찾아와서 ‘좋은 연구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해서, 좋은 연구자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자, “좋은 연구실적을 내고, 좋은 저널에 논문을 많이 내는 사람이 아닐까요”라는 답을 들었다. 분야에 따라서 피인용지수(impact factor)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내기 힘든 경우도 있고 유명해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런 분야의 연구자는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좋은 연구자는 ‘자신이 하는 연구에 대한 생각이 넘치는 논문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동료 연구자에게 통찰력을 줄 수 있는 연구자가 그 분야를 이끌어가는 좋은 연구자라고 본다. 논문을 많이 쓰는 유명한 연구자라도 실질적으로 그 분야를 이끌어간다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 결과적으로 매우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방향으로 연구자가 특정 분야를 이끌다가 다 함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하는 연구의 가능성을 과대 포장해서 유명해지고 많은 연구비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오히려 그 분야의 연구에 대한 비관론을 확대함으로써 긴 호흡의 연구를 바랐던 같은 분야 연구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자라고 해서 꼭 좋은 연구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길러내야 할 연구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연구에 대한 생각이 넘쳐나서 향기가 느껴지는 논문을 쓰는 그런 연구자가 아닐까?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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